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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인구 중 아파트 거주가구가 47%에 달할 만큼(2011년 기준)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아파트가 많은 우리나라.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아파트가 생겨나기 시작한 걸까요?

그리고 우리나라의 첫 아파트는? 궁금하지 않으세요?


 

# 고대 로마에도 아파트가 있었다고?

 

아파트의 역사는 무려 기원전 3~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Wow!

고대로마의 영토가 확장되면서 수도였던 로마는

한정된 면적에 많은 거주민들을 끌어안게 됩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바로, ‘Insula(인술라, 라틴어로 섬이라는 뜻)’.

오늘날의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입니다.

 

 

‘그래봐야 옛날인데 얼마나 높게 지었겠어~’ 라고 생각하셨나요?

놀라지마세요! 3층짜리 인술라가 흔해지고 사람들은 점점 더 높은 인술라를 짓기 시작했고,

 

급기야 초대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는 70로마피트(20.7m),

네로황제 때는 60로마피트(17.75m) 이상 짓지 못하게 했을 정도로

꽤나 높은 아파트를 지었었다고 합니다.

로마 대화재 이후에는 로마시의 인술라 수가 무려 50,000채나 되었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고대 로마의 인술라의 모습]

 


인술라는 기둥이 없이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서 만든 벽이 건물무게를 지탱하는 형식이라

높이 쌓으면 쌓을수록 무너질 확률이 높아 위험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고층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층고가 낮은 형태로 지었다고 하네요.

 

당시의 펌프시설로는 저층에만 물을 공급할 수 있었으므로 고층 거주자들은

공공수도와 공공 위생시설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와는 다르게 인술라에서는 저층이 더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서기 200년, 로마의 멸망 이후 인구가 점차 줄게 되자 인술라의 높이는 낮아지고

로마후기에 가면 인구가 줄어 인술라 같은 대형공동주택이 필요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 우리나라의 첫 아파트- 충정아파트

 

우리나라에 처음 아파트가 등장한 것은 일제시대였던 1932년,

서울 충정로에 건설된 충정아파트입니다.

 

 

 

준공 당시에는 건물주인 도요다 다네오의 이름을 따 도요다아파트(풍전아파트)로 불렸으나, 후에 유림아파트, 현재의 충정아파트로 이름을 변경하였다고 합니다.

 

 

충정아파트는 지하 1층~ 지상 4층에 연면적 1050평으로

당시에 반도호텔과 함께 대표적인 현대식 건물로 손꼽혔는데요,
80년이나 그 자리에 굳건히 서있는 것은 물론,

아직도 거주민들이 살고 있는 명실상부 국내 최장수 아파트입니다.

 

 

오늘날의 충정아파트는 80년 동안 여러 번 바뀐 이름만큼이나

굴곡 있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해방직전에는 호텔로 용도가 변경되어 사용되기도 하고,

해방직후에는 해외에서 귀국한 동포들에 의해 무단 점유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 땐 북한군이 충정아파트 지하실을 학살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충정아파트는 웃지 못할 기막힌 사건도 겪었는데요.

1961년, 5.16 쿠테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선 직후에

한국전쟁 때 아들 6형제를 모두 잃었다는 김병조라는 사람이 나타나

정부에서는 그에게 건국공로훈장을 수여하면서 충정아파트도 무상으로 수여했습니다.

 

 

하지만 차후 6형제 전사가 사기극임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정부에서 다시 아파트를 몰수해갔습니다. 정말 많은 굴곡을 꿋꿋이 버텨낸 아파트죠? 
  

이렇게 살펴보니 아파트의 역사가 참~ 길죠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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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삼성물산건설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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